그림 같은 호수를 끼고 걷는 길.송지호둘레길은 자연과 호흡하는 길이면서 전통마을(왕곡마을)을 만나는 길이다.
#살아있는 송지호
고성은 석호(潟湖)의 고장이다.영랑호(옛 간성군,현 속초시 소재),광포호,봉포호,천진호,송지호,선유담,화진포호가 있다.휴전선을 넘어 북고성의 감호,영랑호(북고성),삼일포로 이어진다.
광포호는 나무들이 수면에 은은하게 비친다고 해서 ‘여은포’라고도 했다.선유담에 대해서는 새가 하늘에서 날고 물고기가 해를 보고 솟구치는 모습이 볼만한 곳이라고 했는데 현재는 육화가 심한 상황이다.영랑호(북고성)의 경우 널리 알려진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생겨난 곳이다.이렇듯 석호마다 사연이 깊다.
화진포호와 송지호는 고성지역의 대표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고성 송지호는 둘레 6㎞ 규모의 자연 석호이다.송지호는 화진포호와는 달리 옛 시인묵객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지는 못했다.
김광섭 향토사학자는 “간성현감 택당 이식이 1633년에 간행한 간성지에는 ‘송지포(松地浦)’라는 지명으로 소개되고 있고,1748년 간성군수 김광우가 쓴 간성군읍지에는 ‘송지포(松池浦)’라고 했을 만큼 호수 주변에 소나무(금강송)가 많다”며 “호수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소나무가 많아서 옛 시인묵객들이 지나치기 일쑤였다”고 말했다.현재의 송지호(松池湖)라는 지명에는 연못과 호수가 함께 들어있다.일제시대 때 인근마을인 공현진에 염전이 가동되면서 송지호 소나무가 많이 베어졌다고 한다.당시 염전은 불을 때서 물을 증발시키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송지호는 가장 생생한 석호이다.옛 문인들은 송지호를 ‘소호(蘇湖)’라고 했다.‘소(蘇)’는 되살아난다,깨어난다는 뜻을 품고 있다.갯트임이 잘 돼 있고 바다와 유기적인 소통이 활발해 먹잇감이 풍부했으므로 호수 내에 ‘재첩’이 많았고 어류도 다양하게 분포했다.송지호관망타워도 재첩을 형상화한 것이다.어패류가 많은 영향으로 여름과 겨울에 수 많은 철새들이 머물렀다.
#그림 같은 풍경,해당화
넓은 호수의 수면은 바람을 따라 무늬가 생겨나고 사라진다.겨울이면 고니들이 머물다가 가는 ‘백조의 호수’다.송지호관망타워에서 바라보면 바다쪽의 오호,죽도,공현진,가진,선유담 풍경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지고 내륙 쪽으로는 운봉산,울산바위,신선봉,송호정,오봉,왕곡마을이 동화 속 그림처럼 보인다.
관망타워에서 내려와 포토존으로 가면 고니 여섯마리(조형물)가 다양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반긴다.호수 수면에 하늘과 산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물속에서는 작은 물고기들이 줄지어 헤엄친다.
포토존 근처에서 본 반가운 꽃.고성군의 군화(郡花) ‘해당화’다.장미를 닮은 홍자색 꽃이 탐스럽다.
해변 모래밭에서 잘 자라는 해당화의 꽃은 장미를 닮았으며 향수원료·약재로 쓰인다.열매도 아름다운데 약용·식용한다.고성지역에서 해당화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토성면 봉포리 소재 ‘해당화공원’도 관리 부실로 주민들의 손가락질을 받다가 현재는 유채꽃밭으로 변해 버린 상황이다.고성의 상징 꽃인 해당화가 멸종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송지호둘레길 걷기에 동행한 박정혜 숲해설가(고성DMZ평화의길 해설가)는 “고성지역 DMZ 내에 4㎞ 길이 규모의 거대한 해당화 군락지가 있는데 철책이 막고 있어 출입할 수 없다”며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서 군락지가 잘 보존되고 있다”고 밝혔다.
#갯봄맞이꽃,메타세콰이어
송지호관망타워에서 인정리 입구까지 걷기길의 거리는 1.2㎞이다.
작은 다리를 건너기 전 만난 ‘다시 잇다,다시 있다’라는 글귀가 적힌 옛 동해북부선 철도 기념물은 잘 정돈돼 있었다.동해북부선 송지호 철교를 소개하는 안내판에는 ‘송지호에 놓인 옛 철길의 아픈 흔적을 보듬어 새 시대를 여는 희망의 상징으로 함께 기억하고자 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박정혜 해설가는 “옛 동해북부선을 기억하는 공간인 이곳을 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볼 수 있도록 송지호 주차장 쪽에 안내판을 세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리를 건너자 굵은 소나무 사이로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 ‘갯봄맞이꽃’ 서식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있다.5~20㎝ 높이로 자라는 윤기 나는 식물로 8∼9월에 연홍색 꽃을 피운다는 작은 갯봄맞이꽃의 모습이 궁금했으나 탐방로의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지는 않았다.비포장길이 500m쯤 이어졌다.장미가 붉었다.송지호가 넓은 품을 펼쳤고 연한 초록색의 향연이 이어지는 습지와 하늘색을 담아낸 수면의 모습이 조화롭다.
송지호관망타워에서 시계방향으로 둘레길을 걸으면 거대한 호수의 모습을 첫인상으로 담을 수 있고,시계반대방향으로 돌면 아기자기한 모습을 먼저 볼 수 있다.박 해설가는 어느 방향이든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 걸으면 신기하게도 활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인정리 입구에서 송호정 입구까지의 거리는 800m이며 시멘트 포장길이 이어진다.햇빛이 강한 날 걷기엔 부담스러울 만큼 그늘이 없다.
시멘트길 가장자리의 좁은 땅에 ‘메타세콰이어’들이 힘겹게 줄지어 서 있었다.뿌리를 내린 흙이 파여나간 흔적이 선명했다.원산지는 중국 사천성으로 성장이 빠르고 병해충에 강하며 높이 40m까지 자라는 나무다.박정혜 해설가는 “환경전문가들은 송지호에서 메타세콰이어들이 살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고 말했다.메타세콰이어 가로수 행렬이 끝나는 지점의 길가 공터에 무리지어 서 있는 메타세콰이어들은 아직 갈 곳을 찾지 못한 듯 했다.
송호정 입구가 가까워지면서 벚나무들이 보였고 초록,빨강,검정의 버찌들이 초록의 잎들 사이에 매달려 있었다.산쪽으로 자작나무숲이 보였다.자작나무숲과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이 가까이 위치해 이색적인 느낌을 선사했다.
#송호정,고성 왕곡마을,논,소나무숲길
‘차량진입금지’라는 경고문이 붙은 차단시설이 송호정 가는 길을 막고 있다.차단시설 옆으로 사람들이 걸어서 드나든 흔적이 있다.길의 바닥에 풀들이 많이 자랐다.송호정은 1959년 10월3일 면장 최창길 이하 독지가,유지,창건기성회장 김원섭 등이 170만원의 모금액을 들여 용소두봉에 건립했다.1995년 퇴락한 정자를 보수·정비했으나 1996년 죽왕면 대형산불 때 소실됐다.산불피해 보상금인 8000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1997년 예전 자리에 복원했다.
송호정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호수와 소나무숲,우뚝 솟은 송지호관망타워는 물론 동해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왔다.무인도인 ‘죽도’까지 송림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송호정 입구에서 왕곡마을 입구까지 가려면 1.1㎞를 걸어야 한다.시멘트포장길이며 그늘이 없다.호수변으로 논이 넓게 위치했다.흰 찔레꽃,붉은 야생 딸기,푸른 개복숭아 등이 지루함을 달래줬다.
왕곡마을은 원래 ‘왕곡(王谷)마을’이었다.왕이 살던 골짜기 마을.현재는 ‘왕곡(旺谷)마을’이라고 적는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왕곡리와 금성리,적동리가 합쳐져 오봉리로 개칭됐다가 현재 왕곡리와 금성리는 오봉1리가 됐다.적동리는 현재 오봉2리이다.
여말선초 시기에 두문동 72인 가운데 한 명인 홍문박사 함부열이 조선왕조 건국에 반대해 간성으로 은거한데서 왕곡마을의 유래를 찾을 수 있다.고성군지(2020년 발행)에는 왕곡마을의 경우 양근 함씨가 들어와 동족마을을 형성했고 강릉 최씨가 양대 주축을 이루고 있다고 서술돼 있다.다섯개의 봉우리가 왕곡마을을 둘러싸고 있으며 앞쪽으로는 송지호가 마을을 보호하는 배산임수의 좋은 터에 자리 잡았다.남쪽의 호근산,제공산,서쪽으로 배제산,북쪽에 두백산,동쪽으로는 골무산이 마을은 둘렀다.
다섯 봉우리의 주산인 오음산(五音山)은 배제산 옆 쪽으로 보인다.옛날 신선들이 이 산과 산 아래에 위치한 선유담에서 오음육률을 즐겼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김광섭 향토사학자는 오음산의 ‘오음’은 ‘오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제주도의 ‘오름’처럼 올라가기 편해서 접근성이 높고 주민들이 아끼며 제사 등의 목적으로 자주 올라가는 산이라는 것이다.실제 오음산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렸다고 한다.
마을에서 1㎞ 정도 걸으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두백산은 현무암 주상절리의 흔적을 볼 수 있다.정상에 서서 동쪽을 보면 운봉산,왕곡마을,송지호,공현진,가진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왕곡마을보존회 관계자는 “고성 왕곡마을은 마을 전체가 전통 북방식 가옥들로 이뤄져 있다”며 “6월부터 10월까지는 토·일요일마다 짚풀공예체험,전통떡메치기체험 등으로 구성된 전통민속상설체험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왕곡마을 입구에서 송지호관망타워까지의 거리는 2.3㎞이다.포장된 시멘트길 옆으로 인도가 조붓하게 만들어져 있다.아기자기한 풍경이다.호수변으로 자리잡은 논과 습지 등이 눈에 들어온다.무료로 대여해주는 자전거를 타는 관광객들의 표정에서 웃음이 넘쳤다.또 한 곳의 ‘갯봄맞이꽃’ 서식지를 지나쳤다.
국도7호선 옆으로 이어진 소나무숲길.약 800m 길이의 기길을 걸으며 송지호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소나무 사이로 푸른 호수의 모습이 보이는데,말그대로 선경(仙景)이 따로 없다.외로운 왜가리 한 마리가 소나무에 앉았다가 날아 올랐다.
박정혜 숲해설가는 “고성 송지호를 방문하는 이들의 표정은 대부분 밝다”며 “미사여구를 사용해 포장할 필요가 없는 힐링의 명소”라고 말했다.